도입

무신론적 철학이 보편적 인권을 설명할 수 있는 지 묻는 분이 계서서 제 생각을 얘기해보겠습니다. 최대한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는데 사실 큰 틀과 기본 원리는 은 단순하기 때문에 중언 부언이 되어서 많은 무신론자들이 당연한 것을 길게 설명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 유신론자에게는 새로운 철학과 사고방식이 필요한 일이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용어와 주제에 있어서 도덕은 주로 인권을 대표로 설명하고, 종교는 기독교를 주 대상으로 삼고, “무신론”과 “세속적”은 적당히 혼용해서 사용하겠습니다. “무신론적 철학”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고,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글의 성격상 “무신론적 철학”이나 “세속적 철학”이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1. 무신론적인( 혹은 세속적인) 철학은 종교적인 도덕과 정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많은 유신론자들의 오해 중의 하나가 무신론적인 철학이 종교적인 철학 혹은 도덕을 부정하거나 완전히 다른 궤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 역시 무신론적인 인간의 뇌와 인류의 문화의 발전 과정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종교로부터 도출된 가치와 도덕 역시 중요합니다. 종교 뿐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은 다양한 가치와 도덕들은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얻어진 것들입니다. 많은 것들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생겨난 것들이겠죠.

인류의 역사에서 상당히 긴 기간동안 과학과 같은 세속적인 철학보다 종교적인 철학들이 주류를 차지했습니다. 인간의 문명은 세속적 철학 이전에 종교적인 혹은 그와 유사한 것들을 경유해서 발전해왔고, 당연히 현대의 많은 가치들은 종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무신론자에게 종교와 그 결과물들은 별개의 혹은 다른 세상의 것이 아니라 주요한 하나의 사회현상입니다.

2. 무신론적인 철학은 절대적인 가치를 주장하지 않는다.

무신론적인 철학에 있어 이러한 가치들은 신의 언명을 통해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란 존재하기 힙듭니다. 보편적 인권 역시 마찬가지 인데, 현상적으로 우리의 시대와 정신은, 그리고 우리의 뇌는 보편적인 생명과 인권에 대한 측은지심과 같은 일부 보편적 도덕률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3. 절대적 가치를 주장하지 않아도 보편적 인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신론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인데 첫번째는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사회와 많은 개인들이 이미 그러한 도덕률을 내재하고 있고, 두번째는 보편적 인권을 확대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인류의 사고와 문명이 발전해 왔기 때문입니다. 중력의 근원을 모르더라도 중력을 주장할 수 있듯이 보편적 인권의 근원적 동력을 몰라도, 심지어 절대적인 동력원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현상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시대 정신과 역사 정신을 부정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4. 도덕의 원리를 밝히는 것이 도덕의 주장에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원리에 대한 가설이 존재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인류는 진화를 통해 정형화되고 선천적인 사고방식을 발전시켜왔고, 후에 문명의 발달을 통해 후천적으로 교육되는 사고방식을 가져왔다고 여겨집니다. 말하자면 본능과 문명에 내재된 가치와 사고 방식이 존재하고, 어떤 것들은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도 있습니다. 블행히도 인류는 복잡한 과정과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도덕이 발달해온 경로를 완전히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가장 간단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은, 그 도덕이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이나 세속적인 가치들에 대해서 개인의 이익을 위한 아전 투구나, 혼돈을 상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진화와 사회구조는 사실 그것보다 매우 복잡합니다. 간혹 직접적으로 불리해 보이는 여러 가치를 사회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데, 이것들은 과거로 부터의 유전과, 미래에 대한 보험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사회라는 거대한 복잡계에 대해서 무언가를 확실히 확언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5.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적 가치들은 생각보다 절대적이지 않다.

무신론적 입장에서 종교를 포함한 “도덕”과 “가치”에 대해 얘기했으니 “종교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죠. 유신론을 주장하는 많은 분들이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인 도덕”을 그 증거로 삼거나 장점으로 꼽습니다. 하지만, 소위 “절대적인 도덕이나 가치”의 시대마다의 해석들은 그다지 절대적이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소중함”이라거나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신의 명령에 대해, 인류는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소중한 인간이나 이웃”의 범위를 정의해 왔습니다. 고대로 부터 가족, 부족, 마을, 국가, 계급, 인종, 성별, 나이, 이념, 권력에 의해 인류는 인간과 이웃을 구분짓고 불평등하게 대해거나 심지어는 비인간적으로, 혹은 재산이나 가축으로 취급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부족민에 대한 사랑” 을 “인간에 대한 사랑”과 같은 절대적인 도덕적 해석으로 볼 수 있을까요? 역사를 통해 인류가 신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으로 옳은 해석”을 하는 것에 실패해 왔다면, 오늘날 어느 종교단체의 해석을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당신의 교리에 대한 해석과 신의 의지에 대한 해석이 다른 교단과 다르고, 역사를 통해 꾸준히 일치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해석이 옳다는 근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남북전쟁당시 북부 교회와 남부교회는 같은 성경을 가지고 노예제도에 대해 싸웠는데, 누가 신의 생각을 제대로 해석한 것일까요?

6. 도덕은 퇴보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퇴보라는 말은 우리의 도덕적 가치를 기준으로 한 말입니다만, 무신론적인 입장에서 흔히 듣는 질문인 “사회적인 이익이 바뀌고 합의가 이루어 진다면, 살인, 강간이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하자면,

“네 그렇습니다.”

이건 인간이 진화의 과정에서 언젠가 다시 문명이 쇠퇴하고, 지능이 낮아져서 소위 “원시인이나 원숭이처럼 진화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과 같습니다. 또한, 인류의 문명이 쇠퇴해서 언젠가 중세나 원시 부족사회와 비슷한 시절로 돌아가, 종교,정치적 소수 권력이 지배하고 여자는 극히 천대 받고, 노예와 농도들은 귀족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귀족의 농노에 대한 강간과 살인이 용인되고, 전쟁시 약탈,방화 강간이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과도 같습니다.

마무리

도덕은 변해왔습니다. “이웃의 소중함과 이웃의 범위의 확대” 같은 몇가지 원리와 유동성을 뽑아낼 수는 있겠지만, 절대적인 도덕 이나 가치 같은 것은 찾기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화와 문명의 발전을 통해서 방향성을 가지고 만들어오고 확대해온 도덕률을 우리의 본능과 문명 깊숙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부정할 이유 역시 찾기 힘들군요.

*) 객관적 도덕과 절대적 도덕 물론 객관적 도덕과 절대적 도덕은 다릅니다. 객관적 도덕을 “시대와 사회를 불문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느끼는 도덕”이라고 정의한다면, 진화론적인 해석을 통해 “상당히 객관적인 도덕”이 존재한다는 입장에 무신론자도 동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진화론적인 해석을 단순히 “생존->이기주의” 로 생각하신다면, 아주 단순한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화론적인 생존은 단순한 개체의 생존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집단에서의 자연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타주의가 관련된 유전자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면 그 유전자는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타주의라는 보편적인 원리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보다 더 객관적인(거의 완전히 객관적인) 도덕을 원한다면 그건 절대적인 도덕과 다른 말이 아닐겁니다.

*) 세속적인 것과, 무신론 세속과 무신론은 각각 다양한 형태로 해석 가능합니다. 저의 대략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무신론 : 신이 존재하는 지 알 수 없으며, 많은 종교에 대한 추론을 통해 특정 신을 믿을 필요가 없거나, 신이 있건 없건 현실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생각 2) 세속적 : 신성과 종교적 교리를 추종하거나 그것에 강제되지 않는 것.